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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68 호 문 하나가 기억을 지울까? 문간 효과를 들여다보다

  • 작성일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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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49
서성민

문 하나가 기억을 지울까? 문간 효과를 들여다보다

  집이나 학교에서 이런 경험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 하려고 했던 일이 있었는데,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순간 무엇을 하려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원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오면, 잊고 있던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경험은 단순한 건망증으로만 설명되지 않을 수 있다. 공간의 변화가 기억과 정보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간 효과(doorway effect)’와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문을 통과하는 순간 기억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문을 통과하면 정말 기억이 사라지는 것일까.


문간 효과란 무엇일까?

  사람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상황이나 장소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이전 상황’과 ‘새로운 상황’을 구분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한 방에서 휴대전화를 찾다가 다른 방으로 이동하면, 방이 바뀌는 순간을 기준으로 새로운 상황이 시작됐다고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일상의 경험을 여러 상황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과정을 ‘사건 분할(event segmentation)’이라고 한다.

▲ 문간 효과(사진: Gemini)


  이러한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사건 지평선 모델(event horizon model)’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뇌는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머릿속에 정리해 두고 있다.

  그러다 장소가 바뀌는 등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기존에 정리해 둔 정보를 뒤로하고 새로운 상황에 필요한 정보를 다시 정리한다. 문을 통과한 뒤 방금 전까지 하려던 일을 순간적으로 잊는 듯한 ‘문간 효과’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문을 통과했다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문을 통과하는 순간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문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기억을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영국 임상 평가 연구 담당자 McFadyen의 연구에서는 기존 문간 효과 연구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가상현실과 실제 환경을 이용한 네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방을 이동한 뒤 이전에 봤던 물체를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확인했으며, 가상현실 실험에서는 방의 시각적 차이를 최소화해 ‘문을 통과했다’라는 변화 자체가 기억에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실험에서 문을 통과한 경우와 그렇지 않았을 때 사이에 유의미한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 환경에서 참가자가 직접 이동한 때에도 문이나 공간의 경계를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억 수행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모든 상황에서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두 번째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기억 과제와 함께 숫자를 거꾸로 세도록 하는 등 작업기억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조건을 설정했다. 작업기억은 현재 필요한 정보를 잠시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능력이다.

  이처럼 기억해야 할 정보가 많아진 상태에서 문을 통과했을 때는 기억 정보에 관한 판단이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이전에 보지 못한 정보를 실제로 본 것처럼 판단하는 오인이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를 문을 통과하는 순간 기존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공간의 경계를 넘는 과정과 작업기억의 부담이 겹치면서 기억 정보 사이의 구분이 어려워진 결과로 해석했다.

  이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간 효과’도 단순히 문 하나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실제 생활에서 방을 옮긴 뒤 갑자기 목적을 잊는 상황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서로 다른 상황으로 이동했을 때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문이라는 물리적인 구조보다 공간의 변화, 상황의 전환, 주의가 분산되는 정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 등이 함께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작업기억과 주의력이 문간 효과에 미치는 영향

  그렇다면 공간을 이동하는 순간 이전 사건의 정보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작업기억이다. 작업기억은 현재 하는 일을 수행하는 동안 필요한 정보를 잠시 머릿속에 유지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현재 진행되는 사건에 대한 사건 모델 역시 작업기억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의 변화는 작업기억에 유지되고 있던 이전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의력 또한 공간의 변화와 기억 처리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은 주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동일하게 처리하기보다, 현재 상황에서 중요하거나 눈에 띄는 정보에 주의를 기울인다. 따라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주변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 새로운 공간의 정보로 주의가 향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이전 공간에서 유지하고 있던 정보에 접근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문간 효과를 다룬 연구에서도 시각적 맥락의 변화가 공간 변화에 대한 주의와 현저성을 높여 문간 효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건망증과는 어떻게 다를까

▲ 문간효과와 건망증의 차이 (사진: Chat GPT 활용)

  문을 지나자마자 할 일을 잊는 경험은 흔히 ‘건망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현상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일상적인 건망증은 해야 할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순간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다. 반면 문간 효과는 공간이나 상황이 바뀌는 순간 기억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현상에 초점을 둔다.

  문을 통과한 뒤 ‘내가 뭘 하려고 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고 해서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순간적인 ‘깜빡함’은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 주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새로운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에 바로 접근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문을 지나면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오해

  ‘문을 통과하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라는 말은 절반만 맞는 표현이다. 문 자체가 기억을 지우는 것은 아니며, 실제 연구에서도 문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억력이 일관되게 감소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간이나 상황이 바뀌는 과정에서 뇌가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정보를 처리하고, 여기에 다른 생각이나 기억해야 할 정보가 겹치면 순간적으로 이전 목적이나 정보를 떠올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방에 들어간 순간 ‘내가 왜 왔지?’라고 멈춰 서는 경험은 기억이 삭제된 것이 아니라 주의와 기억을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잠시 접근이 어려워진 것에 가깝다. 결국 ‘문을 지나면 기억을 잊는다’기보다, 공간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주의와 기억이 잠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성민 기자, 김가연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