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8 호 왜 옛날 기기를 꺼내 들까… 디지털카메라와 구형 아이폰 사용 현상
고사양 이미지 센서와 보정 기능이 당연해진 스마트폰 시대, 최근 다소 낯선 풍경이 포착되곤 한다.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초고화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두고, 일부러 수년 전에 출시된 중고 디지털카메라나 구형 아이폰을 주머니나 가방에서 꺼내 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신 기기가 아님에도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제쳐두고 이들이 다시 아날로그적 디바이스를 찾게 되는 이 흥미로운 흐름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오늘날 청년세대의 깊은 문화적 심리를 투영하는 독특한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렌즈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위협할 만큼 정교해졌고, 촬영 버튼을 누르는 순간 AI가 알아서 빛을 조절하며 피부 톤을 매끄럽게 보정하고 불필요한 피사체를 지워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완벽함의 과잉은 일종의 피로감을 낳았다. 어디를 가나 똑같이 매끄럽고 선명하며, 인위적인 보정 손길이 묻어나는 결과물 속에서 '날것 그대로'를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증 속에서 찾아낸 해답이 바로 2000년대 중후반의 디지털카메라, 한때 추억 속으로 사라졌던 초기형 아이폰 모델들이다. 현대적인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사진을 기록하는 도구만큼은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투박한 방식을 택하는 모습은 최근 청년세대가 과거를 소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옛날 기기는 단순히 불편한 구형 물건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감성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소품이자 문화적 도구로 재탄생하고 있다. '날것의 감성'을 담는 디지털카메라와 구형 아이폰의 특징 올드 기기를 찾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완벽하게 정돈된 디지털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이른바 '날것의 감성' 때문이다.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빛을 최적화하고 잡티를 지워주는 최신 스마트폰 카메라와 달리, 구형 디지털카메라나 초기 모델 아이폰은 저화소 센서와 미숙한 광학 시스템 특유의 투박한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올드 기기 특유의 노이즈는 사진에 깊은 질감을 부여한다. 빛이 부족한 실내나 야간에 촬영하면 화면 전체에 자글자글하게 내려앉는 노이즈는 스마트폰에서는 '결함'으로 취급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여기에 빛이 사방으로 번지는 플레어 현상, 센서의 물리적 한계로 인해 다소 푸르스름하거나 혹은 노르스름하게 묻어나는 독특한 색감 등은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시각적 아우라를 뿜어낸다. ▲ 플레어 현상으로 낭만적인 분위기의 올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사진: 임민서 기자) ▲ 독특한 색감으로 표현되는 올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사진: 임민서 기자) 인위적으로 가공된 필터 어플리케이션이 만들어내는 뻔한 레트로 느낌과 달리, 실제로 그 시절의 센서가 빛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물리적인 한계와 왜곡은 사진에 시간의 결을 부여한다. 매끄럽고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보정 사진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에게, 이러한 불완전함은 오히려 시각적 해방감과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 것이다. 올드 기기로 일상을 담는 이유는? ▲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 (사진 : 박찬웅 기자) 사용자들이 꼽는 장점은 화질이 좋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화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노이즈가 끼고, 색이 실제와 다르게 나오고, 플래시가 얼굴을 하얗게 날리는 것이 오히려 추구하는 감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잘 찍은 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오래된 사진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최신 스마트폰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여러 장을 찍어 합성한다. 어두운 곳은 밝히고 얼굴은 다듬어 한 장으로 내놓는다. 결과물은 대체로 훌륭하고, 대체로 비슷하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구도로 찍으면 누가 찍어도 거의 같은 사진이 나온다. 반면, 20년 전 콤팩트 디카나 구형 아이폰은 그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빛이 부족하면 어둡게 나오고 손이 흔들리면 흔들린 채로 남는다. 사진의 성격도 갈린다. 화소가 낮고 자동 보정이 약해 실내에서는 누렇게, 역광에서는 얼굴이 어둡게 찍힌다. 사용자들은 이 결과물이 필터를 씌운 것과 다르다고 말한다. 보정 앱으로 화질을 일부러 낮추는 방법도 있지만, 완성된 사진을 뒤에서 망가뜨리는 것과 처음부터 그렇게 찍히는 것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못 찍힐 수 있다는 조건이 사진을 다시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일례로 얼마 전 창고에서 오래된 디카를 찾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A 학우는 "최신 휴대폰 카메라는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조금 투박하지만 자연스러운 디카와 구형 아이폰 카메라를 주로 쓰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오래된 기기로 사진을 찍는 이유를 밝혔다. 자연스러움이 특별해진 시대 ▲ 2023년 최저치를 찍은 후 반등하기 시작한 카메라 시장 (사진 : https://lensvid.com/lensvid-exclusive-reviews-and-previews/lensvid-talk-47/) 이러한 흐름은 캠퍼스 밖에서도 확인된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2010년 1억 2100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스마트폰에 밀려 2023년 770만 대까지 줄었다. 그러다 2025년 940만 대로 돌아섰다. 같은 해 전 세계 출하액은 55억 달러로 2020년의 두 배를 넘었다. 후지필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답해야 하는 기술 환경에 압도되고 있다"며 "이를 상쇄하려는 경향이 카메라 수요 증가의 배경 중 하나"라고 말하며 디지털카메라의 재유행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학생들이 무거운 기기를 따로 챙기는 이유도 여기서 멀지 않다. 더 좋은 사진을 얻으려는 게 아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는 환경에서 조금 다르게 남기려는 쪽에 가깝다. 이처럼 디지털카메라와 올드 아이폰 사용 현상은 단지 기술을 거스르는 취향이 아니다. 최신 기기가 알아서 완성해주는 이미지 대신 자기 손으로 실패할 수 있는 사진을 고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획일화된 기록 방식 바깥에서 자기 시선으로 하루를 남기려는 태도가 지금 학생들이 옛날 기기를 꺼내 드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박찬웅 기자, 임민서 수습기자
제 768 호 가을에 가을 옷 못 입는다...길어진 여름과 패션
가을에 가을 옷 못 입는다...길어진 여름과 패션 ▲ 상점의 가을 옷과 상반되는 여름 복장과 선풍기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40825n05844) 9월이면 패션 브랜드는 가을·겨울 신상품을 내놓는다. 매장 전면에는 니트와 트렌치코트가 걸리고 온라인몰에는 'FW 신상' 배너가 붙는다. 물론 개강을 앞둔 학생들도 이 시기에 옷을 산다. 새 학기에 옷장을 바꾸는 건 오래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리에는 반팔이 남아 있다. 9월 중순까지 한낮 기온이 25도를 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면 여름이 그대로이다. 미리 사둔 재킷은 걸린 채로 10월과 11월을 기다리게 된다. 대학생에게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강의실 에어컨은 세게 돌고 밖은 덥다. 학생들은 안은 춥고 밖은 더운 하루를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가게 된다. 즉, 얇은 니트, 가디건, 트렌치코트 등의 간절기 옷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계절 상품은 달력에 맞춰 나오는데 기온은 달력을 따라오지 않는다. 본 기사에서는 가을이 왔지만 가을옷을 입지 못하는 상황이 옷장과 업계 양쪽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짚어본다. 가을은 얼마나 늦게 오고 있을까? ▲ 더위가 극심했던 2024년 9월의 최고 기온 통계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586915) 절기상 가을의 시작은 입추이다. 입추는 대개 8월 7일 무렵으로, 이름과 달리 한 해에서 가장 더운 시기와 겹친다. 그 이유는 절기와 기온 사이의 시차에 있다. 24절기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기준 지역도 한반도가 아니다. 절기와 체감 사이에는 원래부터 간격이 있었다. 비록 입추가 지나면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지만 가을이라고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처서를 지나고 백로를 넘겨도 한낮은 여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절기가 체감과 어긋나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다. 다만 예전에는 입추와 처서를 지나며 아침과 저녁으로 바람이 바뀌는 게 확인됐지만, 요즘은 9월 중순이 되어야 그 변화가 오는 해가 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상청이 1973년부터 2025년까지 53년간의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2016~2025년) 평균 폭염일수는 18.3일이었다. 과거 10년(1973~1982년)의 8.3일보다 2.2배 많은 수치이다. 특히 열대야는 4.1일에서 12.2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더위의 시작과 끝도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폭염 시작일은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10~30일가량 빨라졌다. 과거 7월에 시작되던 더위가 이제 6월 상·중순부터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반면 종료일은 열흘쯤 늦어졌다. 서울의 최근 10년 평균 폭염 종료일은 8월 15일에서 8월 21일로, 대구는 9월 2일까지 밀렸다. 8월 더위는 예상된 더위지만 9월 더위는 달력과 어긋난다. 개강으로 일상이 바뀌는 시기여서, 학생들에게는 이 어긋남이 곧바로 옷차림 문제가 된다. 9월 초 캠퍼스에는 반팔과 긴팔이 섞여 다니고, 아침에 긴팔을 입고 나온 학생이 점심에는 팔을 걷는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이른 확장과 늦은 쇠퇴,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 상승을 지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름을 만드는 기압계가 더 빨리 오고 더 늦게 물러가면서 계절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경계가 흐려지면 옷을 고르는 기준도 흔들린다.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뉜 상품 주기와 실제 기온이 맞지 않으면, 소비자는 계절이 아니라 그날의 기온을 보고 옷을 사게 된다. 계절을 앞서가는 패션, 현실을 살아가는 소비자 패션업계의 시계는 늘 실제 계절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가을·겨울(FW) 신상품은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한여름부터 매장을 채우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계절 변화를 미리 준비하도록 돕겠다는 취지지만, 문제는 매장의 디스플레이와 밖의 날씨 사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9월이 넘어서도 연일 폭염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서, 매장에 걸린 두꺼운 니트나 가을 재킷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부담일 뿐이다. 결국 신상품 소식을 접하고도 정작 소비자가 집어 드는 옷은 당장 입을 수 있는 반팔이나 얇은 셔츠다. 패션 기획자가 설정한 시즌과 실제 소비자의 체감 온도가 어긋나면서, 가을옷을 사고 입는 시점 자체가 뒤로 밀리고 있다. 특정 시즌용 옷보다는 1년 내내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한 소비자는 "날씨 변화가 예측하기 힘든 시기이다 보니, 특정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계절에 걸쳐 고루 입을 수 있는 옷을 주로 찾게 된다"라고 전했다. 예전처럼 얇은 겉옷이나 셔츠 하나로 가을 분위기를 내며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날이 드물어졌다. 무더운 여름 날씨가 길게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찬 바람이 불며 겨울로 직행하는 일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마련한 간절기 옷을 몇 번 입지도 못하고 옷장에 넣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사라지는 간절기, '시즌리스'가 가져온 착장의 변화 이처럼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소비자들의 선택 방식도 달라졌다. 특정한 한 계절만을 위한 옷 대신, 여러 계절을 넘나들며 입을 수 있는 옷을 찾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패션의 핵심은 '레이어드(겹쳐 입기)'다. 여름에 입던 얇은 셔츠 위에 가벼운 조끼나 겉옷을 걸치고, 기온이 더 떨어지면 그 위에 코트를 덧입는 방식이다. 하나의 옷을 특정 시즌에 가두지 않고 기온 변화에 맞춰 자유롭게 조합한다. ▲ 시즌리스 룩 (사진: 듀베티카의 가을 바람막이 오스티아) 이는 패션계의 '시즌리스(Seasonless)'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보인다. 이제 '봄옷', '가을옷'을 따로 사기보다, 소재와 두께를 조절하며 일 년 내내 돌려 입을 수 있는 기본 아이템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짧아진 간절기가 소비자의 단순한 옷차림을 넘어 패션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어 놓은 셈이다. 달력에서 기온으로, 패션의 기준이 바뀐다 기후 변화로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아득히 짧아졌다. 패션업계가 정해놓은 거창한 시즌 구분은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소비자의 삶 속에서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가을이 왔으니, 가을옷을 산다'라는 기존의 공식은 깨졌다. 앞으로의 패션은 달력의 숫자보다 당장의 '실제 기온'과 '옷의 활용도'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단 한 계절만을 겨냥한 옷보다는 계절과 계절을 부드럽게 잇는 옷, 그리고 이를 유연하게 연출하는 레이어드 감각이 현대인의 옷장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계절의 변화 속도에 맞춰, 우리가 옷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기준 역시 새로 쓰이고 있다. 박찬웅 기자, 서성민 기자
제 767 호 2026 상반기를 휩쓴 밈 총정리
올해 상반기 인스타그램과 틱톡의 피드는 유난히 분주했다. 한 주가 멀다 하고 새로운 챌린지가 올라왔고, 어떤 밈은 며칠 만에 사라졌으며 어떤 유행은 학기 내내 살아남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행은 화면 속을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캠퍼스 안팎에서 실제로 학생들의 하루를 바꿔놓은 흐름도 있다. 유행을 구경한 것이 아니라 직접 따라 하고, 친구를 끌어들이고, 결국 습관이 된 경우이다. 본 기사에서는 캠퍼스 안팎에서 학생들이 실제로 따라 하거나 공감했을 법한 트렌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48초짜리 하루 ▲ 셋로그 예시 (출처 : https://www.newswork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9502)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셋로그(SETLOG)'다. 인스타그램 안에서 유행한 영상 포맷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셋로그는 국내 스타트업 뉴챗이 만든 별도의 앱이다. 작동 방식은 단순하다. 앱을 설치하고 그룹 공유방을 만든 뒤, 원하는 사람에게 초대 코드를 보내면 된다. 이후 알림이 울릴 때마다 1~2초 남짓한 영상을 찍어 올리면, 앱이 그것을 모아 하루치 브이로그를 자동으로 완성한다. 편집 기능도 필터도 없다. 아침에 눈 뜬 얼굴, 점심으로 먹은 피자, 오후의 여유로운 커피 한 잔 같은 장면이 그대로 쌓인다. 셋로그는 지난 4월 3일 국내 애플 앱스토어 소셜 네트워킹 부문 인기 차트 1위에 올랐고, 구글 플레이 다운로드는 50만 건을 넘어섰다. 인기의 이유로는 기존 SNS와 정반대 방향을 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잘 나온 결과물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이 없고, 알림이 와도 넘기면 그만이니 말이다. 단지 한 시간에 한 번씩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2초만 담으면 끝나는 것이다. 이 방식이 대학생에게 특히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기숙사 방이든 자취방이든 물리적으로는 분리돼 있지만, 셋로그를 켜두면 친구들의 하루가 같은 화면에 쌓인다.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게 되는 셈이다. 시험 기간에는 이런 성격이 더 뚜렷해진다. 각자의 책상을 찍어 올리는 것만으로 "다들 비슷하게 버티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 만들어진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상태, 학생들이 셋로그에서 얻는 것은 콘텐츠라기보다 이런 종류의 안도감에 가깝다. 즉, 셋로그는 ‘같이 있는 척’이다. 주변인을 만날 여유조차 없는 학생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함께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손동작 하나, 유행어 하나로 통하는 밈 셋로그가 '같이 있는 척'으로 유대감을 만들었다면, 짧은 손동작과 말 한마디로 감정을 압축해 전달하는 유행 또한 상반기 캠퍼스를 흔들었다. ▲ 낭만부부 속 좋~다 밈 클립 (출처 : 연예인 ”김해준“ 인스타) 먼저 새끼손가락과 엄지를 차례로 펴 보이며 "좋~다"를 외치는 손동작이다. 개그맨 김해준과 나보람이 부캐 '김기필'·'나규리'로 등장하는 유튜브 콘텐츠 '낭만부부' 성남 모란시장 편에서,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한 시민이 리듬에 맞춰 이 손동작을 보인 장면이 클립으로 퍼지며 릴스·쇼츠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상황을 가리지 않는 만능 긍정 표현으로 자리 잡아 "점심 메뉴 좋다"처럼 텍스트와 이모지로도 쓰이는데, 일부 매체는 이를 '2026년 첫 밈'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67 키드(출처 : 67 kid original video 썸네일) 해외에서 건너와 국내 교실·SNS까지 점령한 숫자도 있다. 바로 '67(식스-세븐)'이다. 미국 래퍼 스크릴라의 곡 'Doot Doot (6-7)' 가사에서 시작돼, 신장이 6피트 7인치인 NBA 선수 라멜로 볼과 엮이며 틱톡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결정적 계기는 2025년 미국 농구 유튜버 Cam Wilder의 영상 속에서 한 중학생(Maverick Trevillian, 일명 '67 Kid')이 카메라를 향해 "SIX SEVEN!"을 외치며 손 제스처를 하는 클립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바이럴을 탄 것이다. 이 영상이 퍼지면서 67은 SNS를 넘어 학교 교실 등 현실 공간까지 번져, 학생들이 "67쪽 펴"라는 교사의 말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등 일상적 '웃음 버튼'이 되었고, 일부에서는 수업 질서를 방해하는 '디지털 소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팔리아치 검은흑곰 상황극 (출처 : 크리에이터 ”팔리아치“ 인스타그램) 여름 들어서는 상황극형 유행어도 등장했다. 크리에이터 팔리아치가 지난 6월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택시가 이상한 길로 갈 때 남자친구가 막 출소한 척 연기하며 외친 "감옥에서 누가 돌아왔게! 바로 나!"라는 대사가 그것이다. 독특한 억양과 폭발적인 성량이 웃음을 유발하며 X·릴스·쇼츠로 빠르게 번졌고, 그룹 라이즈의 원빈이 사인회에서 이를 패러디해 언급하는 등 아이돌 팬덤까지 끌어들이며 '오랜만의 컴백·재등장'을 알리는 만능 템플릿으로 자리 잡았다. 짧은 유행 속에 담긴 '함께'라는 감각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펴는 동작이든, 아무 뜻 없는 숫자 놀이든, 게임 방송에서 튀어나온 감탄사든, 과장된 상황극 한 줄이든, 밈과 챌린지는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유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관계를 원하고, 짧은 리듬 하나로 복잡한 감정을 압축해 전달하려는 요즘 세대의 방식이 담겨 있다. 혼자 있어도 연결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 별 뜻 없는 말 한마디로 웃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 모두 결국 '함께'라는 감각을 향해 있는 셈이다. 다음 학기엔 또 어떤 유행어와 손동작이 캠퍼스를 채울지, 가볍게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박찬웅 기자, 김건우 기자
제 767 호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달린다
▲ 러닝 기록 (출처 : 박찬웅 기자) 오후 7시 우리 학교 정문, 사람들이 서서히 모인다. 인사는 나누는데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다. '코리안 지드래곤'처럼 각자 정한 이름이 있고,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준비운동은 오 분을 넘기지 않는다. 큰 대화 없이 출발하고 3km를 달리고 돌아와 다 같이 사진 한 장을 찍으면 해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30여 분. 뒤풀이는 없다. A씨(국어교육과·2학년)는 여기에 3개월 째 나온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학과와 나이, 그리고 활동명과 이름이 그들이 아는 정보의 전부이다. 어색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목적이 러닝이다 보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백 개를 넘긴 크루들 ▲ 서울시가 운영하는 7979 서울러닝크루 (출처 : https://www.yna.co.kr/view/PYH20230525068900004)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활동 중인 러닝크루는 이미 100개를 넘었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7979 서울러닝크루의 참가자 수도 329명에서 898명으로 한 해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캠퍼스 안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모 대학 러닝크루의 경우 평소 100여 명이던 신입 지원자가 한 학기 만에 250여 명으로 늘었고, 정회원 수도 200명에 육박했다. 크루 회장은 지원자 수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연령 구성이 특히 눈에 띈다. 국내 러닝 인구는 천만 명 규모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60~66%가 MZ세대다. 미국에서 20·30대 비중이 약 40%, 유럽이 45%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확연히 젊다. 확산 속도도 서구보다 약 2.5배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4년 서울하프마라톤에서는 전체 참가자 2만4명 가운데 2030세대가 1만3294명으로 66%를 차지했다. 동아리와 크루를 가르는 건 규모가 아니라 형태다. 동아리에는 회칙이 있고 회장이 있고 회비가 있다. 크루에는 대부분 없다. 오픈채팅방 하나가 조직의 전부이고, 가입은 간단한 가입 절차면 끝난다. 느슨해서 오래 못 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이다. 우리 학교 러닝 크루 회장 B씨는 크루를 만들 때부터 이 구조를 의도했다고 했다. "조직적인 구조보다는 러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담 없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부담이 없다는 점이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정기 활동에 빠지면 눈치를 봐야 하는 조직과 달리, 크루는 나오고 싶은 날에 나오면 된다. 시험 기간에 한 달을 통째로 쉬고 돌아와도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B씨는 크루의 장점을 '함께' 달리는 데서 찾았다. 혼자였다면 그만뒀을 지점을 옆 사람 때문에 넘긴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서로를 아는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파악하는지 지켜봤다. 출발 전 십 분 동안 오간 대화는 대체로 장비와 기록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 산 장비를 자랑하거나 시계를 설정하고, 러닝 코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전부였다. 달리기가 끝나면 각자 시계를 들여다보고 기록을 공유하면 끝이다. C씨는 이 과정이 자기소개를 대신한다고 말했다. "굳이 자기소개나 억지로 하는 대화 없이도 편하게 이야기하면 되어서 좋아요" 학과나 학번을 묻지 않아도 대화가 성립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다. 학년이 낮다고 조심할 일도, 높다고 챙겨야 할 일도 없다. 위계가 옅어진 자리를 페이스와 기록이라는 공통 언어가 채운다.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들 물론 모든 크루가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해 조용히 나오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D씨는 활동 한 번 만에 발길을 끊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달리는 것을 기대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어요" 이런 문제를 의식한 크루들은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페이스별로 그룹을 분리하거나, 초보자 전용 회차를 만드는 등의 노력이 그 예시이다. 지자체도 비슷한 접근을 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는 상반기 청년 대상 러닝크루가 조기 마감되자 하반기에는 40·50대까지 대상을 넓혔다. 9월부터 11월까지 4주 과정으로 러닝 자세 교정과 슬로우 러닝 이론, 호흡과 페이스 조절법을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기수별 전용 커뮤니티 채널을 열어 자율적인 모임이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만의 문화로 남지 않으려는 시도들이다. 캠퍼스 밖으로 ▲ 러닝 크루 출발 장소인 상명대학교 정문 (출처 : 박찬웅 기자) 크루 활동은 캠퍼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회 참가를 위해 지방과 해외로 떠나는 이른바 '러닝 관광'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20인승 버스를 빌려 단체로 이동하고, 최소 하루 이상 개최 지역의 식당과 숙소를 이용하는 식이다. 한국관광공사 분석에 따르면 주요 마라톤 한 건이 개최 도시에 만들어내는 경제 효과는 평균 50억 원을 넘는다. 러닝 전문 미디어 런톡의 조상래 대표는 마라톤에 청년과 여성이 적극 참여하면서 중장년 남성의 스포츠라는 기존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참가자도 늘어 지역 경제와 국제적 위상 양쪽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육상계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오성관 대구체육중·고 감독은 비인기 종목에 가까웠던 육상에 20·30대가 유입되는 상황을 저변 확대 차원에서 반가운 일로 평가했다. 보는 스포츠에서 직접 하는 스포츠로 흐름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접근성이 좋은 달리기가 가장 적합한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만두면 무엇을 잃는가 취재하며 만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모임을 그만두면 무엇을 잃겠느냐고. 대다수는 “규칙적인 운동 습관”이라는 답변을 내놓았고, 일부는 “느슨한 관계 속에서 의무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발표한 트렌드 분석도 비슷한 흐름을 짚는다. 취향을 매개로 모인 소규모 공동체가 생활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감과 관계에 관한 언급량은 전년 대비 20% 늘었고, 웰니스 관련 언급량도 16% 증가했다. 성과와 경쟁보다 정서적 안정을 중시하는 흐름이 넓어진 결과라는 해석이 붙는다. 크루가 채운 자리를 생각해본다. 학과 사람들과는 수업 이야기밖에 하지 않고, 동아리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혼자 지내기에는 학기가 길다. 그 사이 어딘가에 크루가 들어섰다. 이름을 몰라도 되고 매번 나오지 않아도 되지만, 나가면 누군가 옆에서 같은 속도로 달려주는 관계다. 느슨하다는 말은 약하다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그런데 매주 새벽마다 사람이 모이고, 학기가 바뀌어도 방이 유지되고, 졸업한 선배가 가끔 돌아와 함께 뛴다면 그것을 약하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강하게 묶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남은 관계도 있다. 박찬웅 기자
제 766 호 20대의 책장에 백 년이 꽂혔다
▲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 (사진: https://www.kyungjeilbo.com/view/20260320082125671)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1994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이다. 다시 말해, 성인 열 명 중 여섯 명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간 독서량은 2.4권, 평일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8.2분이다. 직전 조사보다 각각 1.5권,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줄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독서율이 오른 연령대가 딱 하나 있다. 바로 20대이다. 만 19세에서 29세 사이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75.3%로, 2023년보다 0.8%포인트 올랐다. 60세 이상의 독서율이 14.4%인 것과 비교하면 다섯 배가 넘는다. 전체가 내려가는데 한 세대만 올라간다. 그런데 그 20대가 읽는 책의 목록을 보면 더 이상해진다. 교보문고가 6월 발표한 「2026년 상반기 도서 판매 동향」에서 외국 소설 베스트셀러 30위 안에 든 세계문학전집은 12종이었다. 2024년 상반기에는 6종, 지난해에는 9종이었으니 2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는『싯다르타』가 6위,『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11위,『데미안』이 15위,『이방인』이 18위,『인간 실격』이 21위에 올랐다.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가장 새로운 것을 가장 빨리 소비한다고 알려진 세대가, 왜 가장 오래된 책을 사는가. 이 기사는 '고전'을 발표 후 60년 이상 지난 작품으로 규정한다. 두 세대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기준을 적용하면 1966년 이전에 나온 책이 고전이 된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은 모두 이 기준을 여유 있게 통과한다. 고전 문학을 찾는 이유는? ▲ 소설『무진기행』의 일부 문장 (사진: 박찬웅 기자) 고전 문학을 즐겨 읽는다는 우리 학교 학우들에게 본인의 인생 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책을 읽게 된 계기와 독서 경험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20대가 고전 문학을 읽는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고전에는 감동이 있다” 국어교육과 2학년 모성주 학우(22)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자신의 인생 책으로 꼽았다. 학과 수업과는 무관한 책이었다. “요즘엔 서양 고전밖에 안 읽어요. 책을 한동안 읽지 않다가 다시 읽으려 했는데, 고전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왜 신간이 아니라 이 책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잠깐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고전에는 감동이 있어요. 교훈은 물론이거니와, 신간으로 출판되는 책만큼이나 재미있어요." “군대에서 보기 시작했는데, 큰 영향을 받았어요.” 공간환경학부 2학년 최승빈 학우(21)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제 인생에 고전을 주입했어요.” 그는 우연한 기회로 모 출판사의 고전 문학 시리즈를 접한 이후로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지금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는데, 억울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에 큰 영감을 받았어요.” 최승빈 학우가 덧붙인 말은 고전이 가진 기능 하나를 정확히 짚는다. 고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텍스트이다. 인류가 이전까지 축적한 가치관을 전승하고 계승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해요.” 국어교육과 2학년 허윤 학우(21)는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공감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도 덧붙였다. “주인공이 혼란 속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찾아나가는 것에 도움을 받았어요.”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허윤 학우는 고전이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단순 재미를 위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독서가 아닌 스스로를 찾는 경험은 고전이 주는 또 하나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어 좋아요” 국어교육과 1학년 황호준 학우(20)는 최근 선배에게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빌려 읽었다고 했다. “간단하고 강렬한 제목이 독서로 이끌었어요.” 최근에 나오는 긴 제목의 책과는 다르게, 짧은 제목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평소에 제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 우리나라의 시대적 배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황호준 학우의 이야기 역시 고전이 가진 특성 중 하나를 정확하게 짚는다. 고전은 단순 옛날 이야기가 아닌 당대의 사회적 배경 등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20대는 고전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학우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네 가지 답이 나온다. 첫째, 검증된 시간 가장 많이 나온 답이다. "실패할 확률이 낮아서", "이미 검증됐으니까", "안 좋으면 이렇게 오래 남지도 않았을 것" 같은 표현으로 반복됐다. 이것은 소비의 논리다. 신간은 도박이고 고전은 안전자산이다. 매년 수만 종의 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백 년을 버틴 책은 일종의 품질 보증서를 갖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논리에는 함정이 있다. 살아남았다는 것과 좋다는 것은 다르다. 어떤 책은 실제로 뛰어나서 남았고, 어떤 책은 교육과정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남았다. 그리고 어떤 책은 남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작품의 질과 무관한 경우도 많다. 둘째, 알고리즘 밖의 선택 지금의 20대는 태어날 때부터 추천 알고리즘 안에서 자랐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들을지가 대체로 시스템에 의해 제안된다. 그 안에서 '내가 고른 것'이라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진다. 고전은 그 바깥에 있다. 정확히는,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 고전 열풍의 상당 부분은 유튜브 콘텐츠의 영향이었다. 교보문고는『싯다르타』의 판매 급증 배경으로 민음사 공식 유튜브 채널의 소개를 지목했다.『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영화 개봉 소식과 대형 유튜버들의 추천이 겹치며 역주행했다. 즉, 고전으로 향하는 길 자체가 알고리즘을 통과한다. 20대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나려고 고전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을 알려준 것도 알고리즘이다. 셋째, 공통의 언어 문화가 파편화될수록 함께 참조할 수 있는 텍스트는 줄어든다. 예전에는 전 국민이 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은 노래를 들었지만, 지금은 옆자리 친구의 피드와 내 피드가 완전히 다르다. 고전은 그 파편화의 예외이다. 『데미안』을 읽었다는 말은, 상대가 안 읽었더라도 대화의 출발점이 된다. 제목만으로도 통하는 텍스트가 몇 남지 않았고, 고전은 그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것이 고전 열풍의 실질적 동력일 수 있다. SNS에 올리기 좋은 책은 남들이 아는 책이다. 아무도 모르는 좋은 책보다, 다들 아는 오래된 책이 더 많이 찍힌다. 넷째, 물성 이번 취재에서 가장 자주 관찰된 현상이다. 초판본 복원 시리즈의 인기가 이를 보여준다. 예스24 집계에서 초판본 『데미안』은 9위, 『어린왕자』는 10위에 올랐다. 내용은 기존 판본과 같지만 표지와 판형이 다르고, 값이 더 비싸다. 이는 읽기 위한 구매가 아니라 갖기 위한 구매에 가깝다.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더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대의 소설 분야 오프라인 구매 비율은 2024년 28.5%, 2025년 30.1%, 올해 30.6%로 꾸준히 올랐다. 30대 이상은 모두 온라인 구매 비중이 높은데, 20대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정말 읽고 있는가? ▲ 텍스트힙 열풍에 힘입어 2026년 4월 10일부터 6월 14일까지 열린 ‘문장이 태어나는 순간: 한국 근현대문학인의 육필원고전’에서의 이상 시인 육필 원고 (사진: 박찬웅 기자) 이 기사가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다. 앞서 인용한 통계들은 대부분 판매 데이터이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려주지만, 얼마나 읽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두 숫자는 갈라져 있다. 물론 20대의 독서율이 75.3%로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성인 전체의 독서량은 2.4권으로 줄었고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8.2분이다. 도서전은 매진되는데 독서율은 역대 최저이다.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이 상황을 요약한다. 책이 읽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입는 정체성이 됐다는 뜻이다. 물론 기자 본인은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20대의 독서율이 실제로 올랐다. 유일하게 오른 연령대이다. 구매와 독서가 완전히 분리됐다면 이 수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새로운 선택지, 고전 무한히 늘어나는 것 앞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매일 수백 개의 콘텐츠가 피드에 올라오고, 매년 수만 종의 책이 나온다. 선택지가 무한하면 선택은 불가능해지고, 우리는 대신 골라주는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고전은 유한하다. 목록이 정해져 있고, 그 목록은 천천히 늘어난다. 유한한 목록 앞에서만 사람은 스스로 고를 수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가장 빠르게 소비하는 20대에게 고전이 새로운 선택지가 되는 것은 그 책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직접 고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박찬웅 기자
제 766 호 그래미 어워드 아시안 팝 부문, 존중인가 차별인가
▲ 그래미 어워드(사진: 그래미) 그래미 어워드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음악 시상식으로, 1950년대 후반 상업적 성공에만 집중하던 음악 시장에서 순수한 음악 예술성과 기술적 성취를 위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발매된 음반만 심사하는 로컬 시상식이었지만, 현재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시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모두가 잘 아는 비욘세부터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까지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이 시상식에서 상을 거머쥐며 무대를 빛내었다. 그런데 오늘날 K-pop을 포함한 아시아 음악이 주류 문화로 떠오르자 그래미는 올해부터 아시안 팝 부문을 새롭게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안 팝 부문,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오른 BTS(사진: 빅히트 뮤직)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한 BTS는 3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그동안 본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간 그래미는 글로벌 대중성과 음악성을 증명하였더라도 비영어권, 유색인종 아티스트라면 본상에서 배제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에 아시안 팝 부문 신설 및 그래미 체계 개편은 비영어권 아티스트 주요 본상 경쟁 차단, 구조적 유리천장을 세우는 것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다양성 포용이란 명분과 달리 영어권, 비영어권 분리라는 지적이다. BTS 그래미 어워드 출품 보이콧 ▲ BTS 인스타그램 보이콧 (사진: BTS RM 인스타그램) 결국 BTS는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2027 그래미 어워즈 출품을 전면 거부하는 보이콧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하였다. 이에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사 CEO 하비 메이슨 주니어는 “BTS가 올해 그래미 어워드 출품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 역시 창작자로서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서, “아시안 팝 부문은 아시아에서 탄생하는 팝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 그리고 놀라운 성장을 기념하기 위해 신설된 것이다. 이 새로운 부문의 취지는 아시아의 훌륭한 아티스트들에게 집중적인 조명을 비추는 데 있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이후 그래미 공식 홈페이지에서 BTS의 '다이너마이트'와 '버터' 무대 영상이 삭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BTS 팬들과 외신에선 “비판에 대한 치졸한 보복성 조치가 아니냐”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센 역풍에 결국 백기… 아시안 팝 부문 전면 재검토 무대 영상 삭제 논란까지 겹치며 역풍이 불자, 그래미 측은 아시안 팝 부문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래미 어워드는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부 아티스트가 해당 부문이 자신들의 음악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또한 하이브 등 아시아 음악 산업 관계자들과의 협의를 거치며 아시안 팝 부문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이는 폐지라는 말이 아니다. 음악계 전반의 의견을 수렴해 부문의 명칭이나 심사 기준 등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음악을 평가하는 공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음악은 언어나 문화, 인종이라는 틀로 나눌 수 없는 예술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멜로디 하나로 감정을 나누고, 가사에 담긴 의미와 진심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하며 즐길 수 있다. 따라서 그래미 어워드를 포함한 음악 시상식이 지향해야 할 점도 출신 국가나 배경이 아닌 음악 자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티스트의 출신 등으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음악만을 두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생기길 바란다. 장은정 기자
제 765 호 긴장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지나치게 긴장해 실수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잘 알고 있던 내용도 긴장하는 순간 갑자기 생각나지 않거나, 말이 꼬여 당황하기도 한다. 특히 대학생들은 발표 수업, 면접, 대외 활동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긴장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집중력을 높여주고 더 열심히 준비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긴장이 너무 심해지면 오히려 불안감이 커지고,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긴장이 왜 생기는지, 또 어떻게 하면 긴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불안과 부담이 만들어내는 심리 반응, 긴장의 의미 긴장은 어떤 상황에서 불안이나 부담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예민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중요한 일일수록 더 많이 긴장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나 실수에 대한 걱정이 긴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긴장 자체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적당한 긴장은 집중력을 높여주고, 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도와준다. 시험 전 긴장감을 느끼며 마지막까지 공부하거나, 발표 전에 연습을 반복하는 것도 긴장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긴장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너무 큰 부담감은 오히려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평소보다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긴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부담 갖는 모습 (사진: https://www.brainmedia.co.kr/BrainScience/17404) 몸은 왜 긴장할까… 위기 상황에 반응하는 인간의 본능 사람이 긴장하는 이유는 몸이 스스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발표나 시험처럼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 오면 뇌는 이를 위기 상황처럼 받아들이고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손에 땀이 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반응은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방식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위험한 상황에서 빠르게 도망치거나 대응해야 했기 때문에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발달했다. 지금은 실제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나 평가받는 상황에서 비슷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할수록 긴장은 더 커질 수 있다. '실수하면 어떡하지', '못하면 창피할 것 같다'와 같은 생각이 계속되면 스스로 부담을 키우게 된다. 결국 긴장은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 생각과 신체 반응이 함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겪는 긴장, 일상 속 사례들 긴장을 하면 몸과 마음에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손이 떨리거나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땀이 나는 증상이 있다. 심하면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져 준비했던 내용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발표할 때 목소리가 떨리거나 말을 더듬는 것도 흔한 긴장 증상 중 하나다. 심리적으로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커질 수 있다. 작은 실수에도 크게 당황하거나 자신감을 잃게 되고, 점점 상황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긴장을 더 심하게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학생들은 발표 수업이나 시험에서 긴장 때문에 평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처럼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중요한 순간에는 긴장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긴장은 특별한 사람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다. 긴장 해소 및 완화 방법 긴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의도적으로 이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긴장이 계속되면 몸은 위기 상황에 놓인 것처럼 반응하고, 심박수 증가나 근육 경직 같은 증상이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순간 전에는 긴장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잠시 멈추고 몸의 반응을 가라앉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장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심호흡이다. 특히 '4-7-8 호흡법'은 짧은 시간 안에 호흡을 안정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먼저 입을 다문 채 배를 부풀리며 4초 동안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다음 숨을 들이마신 상태에서 7초 동안 멈춘다. 마지막으로 배를 천천히 당기며 8초 동안 입으로 숨을 내쉰다. 이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하면 빨라진 호흡을 가라앉히고 몸의 긴장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점진적 근육 이완법도 긴장을 낮추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긴장된 근육에 일부러 힘을 준 뒤 천천히 풀면서, 긴장과 이완의 차이를 느끼는 방식이다. 어깨가 굳었을 때는 어깨를 최대한 위로 올린 상태에서 10초 정도 유지한 뒤, 20초 동안 천천히 어깨를 내리며 힘이 빠지는 감각에 집중한다. 목이 뻣뻣할 때는 머리와 등을 의자에 기대고 턱을 가슴 쪽으로 붙인 뒤 10초 정도 유지한 다음, 천천히 힘을 빼며 목 뒤쪽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느껴볼 수 있다. ▲ 심호흡 (사진: https://www.nct.go.kr/distMental/crisis/crisis01_4_2.do) 복부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발표나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면 배에 힘이 들어가고 호흡이 얕아질 수 있다. 이때는 복부를 단단하게 긴장시킨 상태로 10초 정도 유지한 뒤, 천천히 힘을 빼며 배가 편안하게 풀리는 느낌에 집중한다. 이후 손을 배 위에 올리고 가슴이 아니라 배가 움직이도록 호흡하면 복식호흡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갑자기 불안이 커질 때는 나비 포옹법을 활용할 수 있다. 나비 포옹법은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몸을 좌우로 번갈아 두드리는 방법이다. 먼저 두 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한 뒤, 양손을 반대쪽 팔뚝 위에 올린다. 그 상태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듯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10~15번 정도 가볍게 두드린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불안한 장면이 떠오를 때, 스스로를 토닥이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나비 포옹 (사진: https://www.nct.go.kr/distMental/crisis/crisis01_4_5.do) 불안한 생각이 많아질 때는 심상화도 시도해 볼 수 있다. 실수에 대한 걱정을 억지로 멈추려 하면 오히려 그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될 수 있다. 이럴 때는 바다, 숲, 햇빛, 호수처럼 편안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 평소 마음이 편해지는 사진이나 장면을 정해 두면, 긴장되는 순간에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평소에 운동과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긴장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걷기, 조깅, 계단 오르기, 수영,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몸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스트레칭은 굳은 근육을 풀어주고 몸의 긴장을 낮춰준다. 음악 감상, 산책, 예술 활동처럼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가지는 것도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긴장이 심해서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줄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약은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임의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반복적인 발표 불안이나 극심한 긴장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상담센터나 병원 등 전문 기관에 먼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내 상담센터 프로그램 우리 대학 학생상담센터에서도 발표 불안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학생상담센터는 ACT 기반 발표 불안을 다루는 '발표 불안 극복 집단 상담: 병아리 마이크를 잡다'를 진행했다. 발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며, 발표 상황에서 자신감을 키우고 싶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병아리 마이크를 잡다'는 상담 선생님과 또래 대학생들이 함께 ACT 기반 기법을 활용해 발표 불안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참가자는 긴장과 불안을 무조건 없애려 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발표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다. ▲ 2025학년도 2학기 발표불안 극복 집단상담 포스터(사진: https://scc.smu.ac.kr/scc/board/notice.do?mode=view&articleNo=758591&article.offset=10&articleLimit=10) 긴장을 나의 리듬으로 바꾸기ᅠ 긴장은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시험이나 발표, 면접처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몸과 마음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긴장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긴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이다. 심호흡, 근육 이완, 심상화, 가벼운 운동처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긴장을 조금씩 다룰 수 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면 상담센터 프로그램처럼 타인이나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긴장은 피하거나 없앨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수 있는 감정이다. 중요한 순간에 긴장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만큼 그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긴장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루는 연습이 쌓인다면, 중요한 순간에도 조금 더 차분하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김지연, 서성민 수습기자
제 765 호 연결의 시대, 왜 혼자를 택하는가?
연결의 시대, 왜 혼자를 택하는가 카카오톡 알림은 끊이지 않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24시간 누군가의 일상을 전송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연결된' 세대가 가장 적극적으로 '단절'을 선택하고 있다.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끊임없는 관계 유지와 리액션 노동에 지친 Z세대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10명 중 7명이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도 "오늘 하루 아무도 안 만나고 싶다"는 게시글에 공감 반응이 쏟아지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제 캠퍼스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안쓰러운 광경'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읽힌다. 혼밥, 흔카, 혼행 등… 혼자의 방식은 다양하다 ▲ 평소 혼자서 하는 활동 조사 (출처: https://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949) 1인 라이프스타일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상명대 주변에는 각 유형에 딱 맞는 공간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가장 먼저 대중화된 혼밥은 이제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 아니다.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가 혼밥의 가장 큰 매력이다. 혼카 역시 카공(카페 공부)을 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멍때리는 것 자체가 힐링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부암동의 빙수 맛집 '부빙' 은 혼자 방문하기에 제격인 공간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시그니처 빙수(완소빙수, 핑크 라즈베리 빙수 등)중 특히 딸기빙수가 가장 유명하며,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혼자 창밖을 보며 멍때리기에 좋다. ▲ 홍제폭포 (사진: 박찬웅 기자) 홍제천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홍제폭포는 낙수 소리가 도시 소음을 자연스럽게 차단해 준다. 이어폰 하나 꽂고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붐비지 않아 진정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쉽다. 혼자 책 한 권 들고 앉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작품 하나 앞에 얼마나 오래 서 있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게 혼전의 가장 큰 자유다. 3호선으로 바로 접근 가능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은 현대미술 특유의 여백과 정적이 혼자 방문하기에 최적이다. 야외 조각 정원과 카페까지 갖춰 반나절을 충분히 보낼 수 있고, 무료 상설 전시도 운영해 부담이 없다. ▲ 서촌 거리 (사진: 박찬웅 기자) 일정을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 없이 움직이는 혼행은 멀리 갈 필요가 없다. 경복궁·창덕궁 일대는 이른 오전이나 평일 오후에 방문하면 관광객이 적어 고즈넉한 정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돌담길을 따라 북촌·서촌 방향으로 산책을 이어가거나, 근처 작은 찻집에서 혼차(혼자 차 마시기)로 마무리하는 반나절 혼행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 부암동 풍경 (사진: 박찬웅 기자) 이외에도 서울캠퍼스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에 위치한 부암동도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장소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와 세월을 간직한 식당들, 아기자기한 소품 숍과 서울 미술관을 비롯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는 혼자서도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을 쉽게 혼동하곤 한다. 혼자 있는 상태를 외롭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철학자 폴 틸리히는 이 두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를 원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고통의 감각이다. 반면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으로, 자신과 깊이 대화하는 내면의 공간이다. 같은 빈 방 안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 고독을 누리는 사람의 경험은 전혀 다르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은 때때로 불안하게 느껴진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아무 영상이나 틀거나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게 되는 이유는 혼자 있음을 외로움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뎌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독의 문 앞에 다다를 수 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일기를 쓰며 오늘 하루 어떤 감정이 흘렀는지 되돌아보거나, 음악 한 곡을 온전히 집중해서 듣거나, 아무 목적 없이 산책하면서 생각이 떠오르도록 두는 것. 이러한 행위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귀 기울이는 연습이다. 즉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기대에서 벗어나 있을 때, 우리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혼자 있는 시간이 자동으로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이다. 타인에게서 잠시 멀어지는 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기회로 바라볼 때 고독은 비로소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나를 찾는 시간, 고독 우리는 늘 바쁘다. 쉬는 시간에도 무리 지어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화면 속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혼자인 시간은 마치 생산성 없는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성실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려면 그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듯,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상처받으며, 어떤 꿈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타인이 대신 찾아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 안에서 조금씩 찾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잠깐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이어폰을 빼고, 화면을 내려놓고, 그냥 가만히 있어 보는 것. 불편하다면 그것도 좋은 신호다. 그 불편함 너머에 당신이 아직 만나지 못한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혼자인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박찬웅 기자, 김건우 수습기자
제 765 호 SNS 타고 번진 우베 열풍…글로벌 시장 흔드는 아시아 식재료
SNS 타고 번진 우베 열풍…글로벌 시장 흔드는 아시아 식재료 ▲ 우베 외형 (사진: https://link24.kr/3NKlgHn) 최근 카페와 프랜차이즈 디저트 시장에서 '우베(Ube)'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카페 진열대에는 보랏빛 크림이 올라간 라떼와 도넛, 케이크가 등장하고 있고, SNS에서는 우베 디저트 인증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초록빛 말차 디저트가 젊은 소비자층의 취향을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보랏빛 우베가 새로운 '인증샷 디저트'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우베가 어떤 식재료인지와 함께 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지, 나아가 우베·말차·흑임자 등 아시아 식재료들이 글로벌 디저트 시장에서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2의 말차'로 떠오른 우베 우베는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보라색 참마(Purple Yam)다. 자색고구마와 비슷한 외형을 가졌지만, 맛은 조금 다르다. 은은한 바닐라 향과 부드러운 단맛이 특징이며, 우유나 생크림과 잘 어울려 음료와 디저트 재료로 널리 활용된다. 필리핀에서는 오래전부터 전통 디저트 재료로 사용돼 왔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디저트 원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베가 빠르게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SNS 친화적인 비주얼 때문이다. 소량만 넣어도 강렬한 보랏빛 색을 낼 수 있어 사진과 영상에서 시각적으로 눈에 잘 띈다. 실제로 최근 디저트 시장에서는 '맛있는 음식'보다 '찍고 싶은 음식'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디저트 경쟁이 맛과 가격, 용량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진으로 남겼을 때 얼마나 돋보이는지가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 인스타그램의 우베 관련 게시물 (사진: 인스타그램 캡쳐) 우베 열풍은 '보는 경험'을 중시하는 최근 소비 문화와 맞닿아 있다. 보라색은 매장 진열대에서도 눈에 띄고, SNS 피드 안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가진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는 '#ube' 해시태그 게시물이 76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베 음료를 들고 찍은 사진이나 보랏빛 케이크 단면을 강조한 영상 콘텐츠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여기에 건강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 역시 우베 인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젊은 소비자층은 단순히 칼로리가 낮은 음식보다, 건강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식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베는 식물성 원료라는 점과 함께 항산화 성분, 건강식 이미지가 더해지며 '웰니스 디저트'라는 인식까지 얻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베를 두고 "제2의 말차"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말차는 쌉싸름한 맛을 어느 정도로 조절하느냐가 관건이었지만, 우베는 달콤한 바닐라 풍미가 있어 진입장벽이 낮다"며 "신제품 개발 속도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어 여러 업체가 즉각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말차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맛이었다면, 우베는 비교적 대중적인 단맛을 갖고 있어 소비자 접근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국·영국·일본 거쳐 한국까지…글로벌 트렌드 된 우베 우베 열풍은 한국보다 해외 시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2020년 대형 유통업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가 우베 아이스크림과 팬케이크 믹스를 출시하며 대중화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조금씩 관심을 받던 우베는 '스타벅스'가 미국 일부 매장에서 우베 음료를 판매하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트렌드로 떠올랐다. '스타벅스'는 올해 '우베 코코넛 마키아토' 등을 출시하며 우베 열풍 확산에 힘을 실었다. 영국의 코스타 커피(Costa Coffee)도 우베 핫초코를 출시했고, 일본에서는 편의점 디저트 시장을 중심으로 우베 제품이 등장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색감이 강한 디저트가 SNS에서 주목받는 소비 문화와 맞물리며 우베 관련 제품들이 빠르게 확산됐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은 국내 시장에도 빠르게 영향을 미쳤다. 최근 '스타벅스 Korea'는 '우베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출시했고, '파리바게트'는 '우베 생크림빵'과 '우베 라떼'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노티드', '투썸 플레이스' 등 다양한 브랜드가 우베 메뉴를 잇달아 출시하며 유행에 동참하고 있다. ▲ 편의점에 출시된 우베 쿠키 (사진: 이윤진 기자) 편의점에서도 우베로 만든 아이스크림, 빵, 과자 등 다양한 디저트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연세유업의 '연세우유 우베 생크림빵'은 출시 4일 만에 5만 개 이상 판매되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업계에서는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워 필리핀산 우베 파우더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베·흑임자·유자…아시아 식재료의 글로벌화 우베 열풍은 단순히 하나의 디저트 유행이라기보다 아시아 식재료가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해외에서는 김치와 유자, 팥 등이 새로운 아시아 식문화의 상징처럼 소비된 바 있다. 최근에는 우베뿐 아니라 흑임자(검은깨) 역시 글로벌 디저트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 식재료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검은깨를 넣은 말차 음료 검색량이 147% 급증하는 등 미국 전역의 트렌디한 카페와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흑임자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동아시아 음식 문화에서나 익숙했던 검은깨가 미국에서는 독특한 풍미와 건강 이미지를 가진 프리미엄 식재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소비자들이 단순히 새로운 맛을 찾는 것을 넘어, 특정 지역의 식문화 자체를 경험하려는 흐름과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서구권 디저트 문화가 한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아시아 식재료와 음식 문화가 역으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SNS는 이러한 확산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메뉴가 영상 플랫폼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소비자들은 새로운 식재료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우베 역시 필리핀 전통 식재료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미국과 일본, 한국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글로벌 디저트 재료로 자리 잡고 있다. ▲ '빽다방'에 출시된 우베 음료 (사진: 이윤진 기자) 단순한 유행 넘어 새로운 식문화로 다만 우베 열풍이 계속되면서 원재료 수급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우베는 재배 기간이 최소 9개월 이상으로 길고 기후 변화에도 민감해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 실제 필리핀에서는 최근 글로벌 수요 증가로 수출량이 크게 늘어나며 공급 부족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필리핀이 자국 수요를 맞추기 위해 베트남산 우베를 수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우베가 단순한 '반짝 유행'에 그칠지, 말차처럼 장기적인 식재료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우베 열풍은 단순한 디저트 유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글로벌 식문화의 확산, SNS 중심 소비 문화, 건강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트렌드가 하나로 결합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말차에 이어 우베가 새로운 식재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금, 다음에는 또 어떤 나라의 식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될지 관심을 끈다. 이윤진 기자
제 763 호 고르다 끝나는 시대, OTT의 역설
▲대표적인 OTT 플랫폼의 로고 (사진: https://www.business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0123#google_vignette) 무료한 주말 오후, 넷플릭스나 티빙 등 OTT 플랫폼을 켜고 볼만한 콘텐츠를 고르다가 포기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볼만한’ 콘텐츠를 찾지 못해 결국 플랫폼을 종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오히려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된 것일까, 아니면 더 많은 선택 앞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일까. OTT의 확산과 콘텐츠 소비 방식 변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결과 (사진: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51215000031) OTT는 지난 10년 사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2016년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이후 우리나라의 OTT 시장은 매년 28%씩 성장했다. 더불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결과, OTT는 최근 1년 콘텐츠 분야별 이용률에서 89.1%로 1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9명은 OTT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 소비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보는 온디맨드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소비자가 콘텐츠 선택의 주체가 되어 개인의 취향과 일정에 맞춰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콘텐츠 선택의 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하나의 플랫폼만으로도 수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공하며,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경우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OTT 서비스의 확산은 소비자에게 이점만을 제공하는 듯 하지만, 이 능동적 선택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OTT 서비스의 확산으로 인한 '선택 피로' 현상 ▲선택 피로 현상 (사진: Chat gpt) 하나의 콘텐츠를 선택하기까지 OTT 플랫폼 소비자는 장르와 줄거리, 배우, 평점까지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게 된다. 여기에 플랫폼별 추천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비교 대상은 더욱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고, 결정이 지연되거나 선택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에서 ‘선택 과부하’ 또는 ‘결정 마비’로 설명된다.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정보 처리에 필요한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곧 의사결정 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선택의 질과 속도 모두가 떨어지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선택 피로 현상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OTT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 역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시청 기록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안하지만, 유사한 유형의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선택의 범위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으며, 소비자의 피로도를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 단계에서 이미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실제로 OTT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무엇을 볼지 고르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는 경험이 빈번하게 공유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콘텐츠 소비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동시에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OTT 서비스가 제공하는 풍부한 선택지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선택 과정에서의 부담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확대될수록 선택의 책임 또한 증가하며, 그 결과 소비자는 점차 피로를 경험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OTT 플랫폼에 주어진 과제 OTT 서비스는 콘텐츠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확장시키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이용자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콘텐츠 소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의 과잉으로 인한 ‘선택 피로’는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콘텐츠의 양적 확대가 반드시 소비 경험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OTT 환경은 ‘풍요 속 결핍’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OTT 시대의 과제는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 있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있다. 선택의 자유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현실 속에서, 이용자가 보다 쉽게 선택하고 온전히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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