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8 호 [기자석] 좋아하는 것 있으세요?
“좋아하는 것 있으세요?” 처음 만난 사람과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면 으레 등장하는 질문이다. 취미가 무엇인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몇 마디만 나누어도 그 사람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아 나 역시 종종 묻는다. 막상 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대답이 느려진다. 전시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책도, 영화도, 노래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줄까지 서서 먹을 열정은 없고, 게임도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던 몇몇 플래시 게임에서 업데이트가 멈춰 있다. 좋아하는 것은 분명 많은데, 말을 할 때면 자신이 없어진다. 하나를 오래 좋아한 사람 앞에서는 내가 가진 마음이 얕아 보인다. 혼자 기준을 세우고 자꾸만 망설인다. 오래 좋아하는 건 자신 있는데, 깊이 좋아하는 건 자신이 없다. 이 정도면 좋아한다고 해도 되는지, 이 정도면 잘한다고 말해도 되는지. 이 정도의 경험으로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되는지 자꾸 망설여진다. 좋아하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데, 나 자신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은 더 어렵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는 나를 설명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공과 취미로 나를 정의한다. 자기소개서에는 좋은 단어만 고르고 골라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한다. 완성된 글을 읽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얼마 전, 나를 설명할 말이 하나 늘었다. ‘인턴’. 명함도 생겼다. 이름과 소속, 연락처가 작은 종이 안에 가지런히 들어가 있는 걸 보며 생각한다. 이래서 명함을 만드는구나, 전부 설명하기엔 입 아프니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에게 알려주는 건 더 골치 아픈 일이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어려워진 것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 전화를 걸기 전 첫 문장을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몇 번을 쓰고 지운 메일은 보낸 후에도 읽어본다. 전에는 별로라고만 생각했던 눈웃음^^과 ‘:)’를 쓰게 되고, ‘ㅎㅎ’와 물결표가 늘어난다. 말은 길게 하는 것도 힘든데 짧게 하는 것도 참 어렵다. 어른이란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있어도 정말 필요한 만큼만 꺼낼 줄 아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자꾸 내가 더 어렸으면, 아직 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툴러도 괜찮고, 조금 더 배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 한구석에는 대학이 6년제였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은 사회에 나가고 싶지 않은데, 시간은 잘도 흐른다. 벌써 대학생이 된 후 맞이하는 세 번째 가을이다. 곧 27학번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조급해진다. 시간은 야속하게만 흘러가고, 붙잡고 싶은 지금은 더 빠르게 지나간다.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후회도 한다. 그때 이걸 해볼걸, 말을 다르게 할걸, 조금만 더 노력할걸.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을 거라며 과거의 나를 애써 믿어보려고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ᄍᅠᆯ 수 없다. 그래도 예전의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것을 지금의 나는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을 거라며 나를 다독여본다. 자꾸 아쉬운 건, 그만큼 지금의 내가 조금은 자라서 일 거라고.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세상은 너무 많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도, 아직 좋아해 보지 못한 것도 많다.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막막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다행이다. 내가 이 세상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래 보고, 많이 좋아하고, 여러 번 부딪쳐보고 싶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이 자꾸 바뀌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아도, 명함 한 장에 나를 다 담을 수 없어도. 언젠가 누군가가 다시 “좋아하는 것 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지금보다 조금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나를 조금 더 잘 알고 있을까.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내겐 즐거움일 것이다. 이은탁 부장기자
제 768 호 [한글날 기획] 존댓말부터 신조어까지… AI는 한글의 '뉘앙스'를 읽을까
2021년에 개봉된 뮤지컬계 영화 <디어 에반 핸슨>에는 흥미로운 번역이 들어가 있다. <You Will Be Found>라는 노래 가사는,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당신은 발견될 거예요”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실제 영화 자막에서는 “우리가 당신을 찾을게요”로 송출되었다. “My house”, “My family” 등등의 표현처럼 개인 의식이 중요한 서양의 문화와 다르게, 우리나라는 공동체의 문화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딱딱한 수동 문장에 따뜻함을 한 스푼 넣은 능동 문장이 된 것이다. 이렇듯 번역은 단순히 다른 나라 말을 우리나라의 말과 대응되도록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해당 나라의 문화와 뉘앙스에 맞춰, 최대한 화자의 의미가 전해지도록 표현하는, 하나의 창작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손쉽게 사용하는 AI 번역기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와 뉘앙스를 인지하고 번역하는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형 밥 먹었어?”를 각각 파파고, 구글 번역, 챗지피티에 영어로 번역시켜 봤다. 파파고에서는 “Bro, have you eaten?”으로, 구글 번역에서는 “Hey, have you eaten?”으로, 챗지피티에서는 “Hyung, did you eat?”으로 번역되었다. “형”이라는 호칭을 파파고에서는 나이 차이를 표현하는 단어로, 구글 번역에서는 친밀감을 표현하는 단어로, 챗지피티에서는 단순히 발음대로 번역하였다. 세 번역 모두 뉘앙스가 다르며,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형”이라는 호칭은 나이 차이, 친밀감, 서열 같은 관계성이 담긴 단어인데 영어에는 정확히 해당되는 단어가 하나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AI 번역기는 존댓말과 신조어를 구별할 수 있을까 우리말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존댓말이다. 존댓말 체계가 없는 언어로 번역할 때 AI 번역기는 한국어의 존댓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번에도 파파고, 구글 번역, 챗지피티에게 반말인 “밥 먹었어?”, 해요체인 “밥 드셨어요?”, 그리고, 하십시오체인 “식사하셨습니까?”로 각각 테스트해 봤다. 먼저 파파고에서는 “Have you eaten?”, “Did you eat?”, “Have you eaten?”으로 분사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존댓말의 뉘앙스를 번역하진 못하였다. 구글 번역 역시 모두 “Have you eaten?”으로 번역되어, 존댓말을 구별하지 못하였다. 챗지피티에서는 각각 “Did you eat?”, “Have you eaten?”, “Have you had a meal?”로 존댓말의 차이를 의식하였지만 여전히 존경의 표시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존재했다. 이번에는 신조어로 “ㄹㅇㅋㅋ”를 테스트해 봤다. 해당 신조어는 “진짜”라는 의미에 웃음을 더해 공감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의미를 AI 번역기는 구현해 낼 수 있을까. 파파고와 구글 번역에서는 “For real lol”, 챗지피티에서는 “For lol”, “Lmao, fr”로 표현되었다. 세 번역 모두 웃음의 의미까지는 담아냈지만, 맥락에 따른 공감의 의미는 전달해 내지 못하였다. ▲ AI 번역기 사용 모습 (사진: 파파고) 존댓말이 AI의 벽인 이유, 데이터와 문법의 이중 장벽 이런 오류는 왜 반복될까. 첫 번째 원인은 학습 데이터의 편중이다. 대다수 거대언어모델은 영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말뭉치로 학습된다. 최근 다국어 모델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영어를 중심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델이 커질수록 프롬프트 언어의 원어 하위 공간 내에서 작동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이는 많은 언어로 정확히 답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언어 간 지식 전달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영어에는 대응 구조 자체가 없는 한국어 높임 표현은 이런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학습이 얕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원인은 한국어 높임법 자체의 복합성이다. 국어학계는 한국어의 높임법을 화자가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주체 높임법, 목적어나 부사어의 대상을 높이는 객체 높임법, 청자를 높이는 상대 높임법 세 갈래로 구분한다. 각 방식은 형태론, 어휘론, 의미론, 화용론에 걸쳐 전면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국어 문법 연구에서 까다로운 영역으로 다뤄져 왔다. 특히 상대 높임법은 문장을 끝맺는 종결어미에 따라 위계가 나뉘는데, 그 등급은 하소서체부터 하십시오체, 해요체, 하오체, 하게체, 해체, 해라체까지 일곱 단계에 이른다. 화자와 청자의 나이, 지위, 친밀도라는 '관계 정보'가 문장 하나하나에 코드처럼 새겨져 있는 셈이라,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옮기는 번역으로는 이 관계값을 온전히 복원하기 어렵다. 실제 현장에서도 같은 문제가 확인된다. 지난 4월 경향신문이 보도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통번역과 AI' 수업 참관기에 따르면, 번역기는 수업에 등장한 신조어 '힘숨찐'(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을 '매우 강력한(Strong and Strong)'으로 잘못 옮겼다. 이 수업을 진행한 한국외대 AI데이터융합학부 최재걸 교수(전 네이버 개발자)는 “해석하기 까다로운 단어가 쓰인 여러 맥락을 찾아오라고 AI에 지시하는 게 중요하죠”라고 설명했다. 결국 지금의 AI는 맥락을 스스로 찾기보다 사람이 맥락을 넣어줘야 제 실력을 발휘하는 도구에 가깝다는 뜻이다. 기술이 넘지 못한 자리, 결국 사람이 채운다 ▲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출처 : pixabay) AI 번역기 앞에 앉아 존댓말과 신조어를 넣어 본 이번 실험은, 기술의 정확도를 시험하는 자리이자 동시에 한국어라는 언어의 정교함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문장 하나에 화자와 청자의 관계, 나이, 상황까지 담아내는 한국어의 높임 체계는 AI에게 아직 넘기 힘든 벽이었고, 그 벽의 정체는 결국 '맥락'과 '관계'였다.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학습해도, 지금 이 말을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건네는지는 사람만이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뜻도 다르지 않았다. 어제서문은 백성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이가 많음을 안타까워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한글의 출발점은 문자 자체의 우수성이 아니라, 그 문자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을 맞은 지금, AI가 그 문자를 대신 옮겨주는 시대가 왔지만 정작 관계와 맥락을 읽어내는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한글날, 기술의 시대에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한글의 우수성은 문자의 정교함을 넘어, 그 문자로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해 왔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김건우 기자, 조채은 수습기자
제 768 호 [한글날 기획] 시각으로 읽는 한국, 외국인이 반한 한글의 멋
한글날은 10월 9일로,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로, 배우고 사용하기 쉽다는 특징과 독창적인 문자 체계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에게 한글은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한글은 한국을 처음 접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하나의 문화적 요소다. 곳곳의 가게 간판과 안내판에서 한글을 접하면서 한국의 분위기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익숙하게 지나쳤던 한글이 외국인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한글에 담긴 한국의 매력 한글을 배우고 있는 외국인 학우를 만나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와 한글을 배우며 느낀 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국언어문화전공 김 드미트리 학우 (사진: 본인 제공) 한국언어문화전공 23학번 김 드미트리 학우는 고려인으로서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한글 자음으로 'ㅋ', 모음으로 'ㅣ'를 꼽으며 "모양이 단순하고 발음할 때의 느낌도 재미있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문구도 생겼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문구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나오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이다. 드미트리 학우는 "짧은 문장이지만 사람이나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인상 깊었다"며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글이 가진 매력을 더 많이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거리에서 만난 한글 ▲ 인사동 한글 간판(사진: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5/10/09/IEBYZQ5FNREZ3MOSAGBIXJ2XEY/) 그렇다면 한글이 거리 곳곳에 녹아 있는 한국의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인사동을 걷다 보면 다른 거리와는 조금 다른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음식점과 카페, 상점의 이름이 영어보다 한글로 적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경은 인사동의 전통문화 거리 조성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인사동은 전통 공예품과 미술품을 판매하는 상점, 전통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전통적인 거리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간판 역시 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면서 한글을 활용한 간판을 권장하고 있다. 미시간대학교에 재학 중인 미국인 다니엘 씨(21세)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올해 여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인사동과 광화문 등을 둘러봤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프랜차이즈까지 한글로 표기된 점이 인상 깊었다"며 "한글과 전통적인 글씨체가 어우러져 거리 자체가 하나의 한국 문화처럼 다가왔다"고 전했다. 이어 "외국인들은 한국적인 멋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는 것 같다"며 "이러한 공간들은 한국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사동에서 한글이 적힌 배지와 옷, 양말 등을 기념품으로 구입했고, 특히 한글이 적힌 스티커는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기념품"이라고 설명했다. 다니엘 씨는 미국에서도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주변에 한글이 예쁘다며 손글씨를 연습하거나, 한국에 와 어학당을 다니다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다"며 "생각보다 미국에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매력을 인정받다 한글의 매력은 국내 거리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글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고유의 매력을 발휘하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끄네끼’가 있다. ‘끄네끼’는 강원도 춘천의 한 제조업체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만들어 온 직조 방식의 머리끈이다. ‘끈’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인 끄네끼에서 이름을 따온 이 제품은 국내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제품이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한 라이프스타일 기업과 협력해 해외에 진출하면서 패션 액세서리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눈여겨볼 점은 해외에서 브랜드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끄네끼’라는 한글 표기와 발음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영문식 이름으로 바꾸거나 현지어로 변형하지 않고 경상도 사투리의 정겨운 운율과 한글 발음의 결을 살린 표기 방식이 오히려 타 제품과 차별화되는 고유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졌다. ▲ 끄네끼 제품 (사진: 끄네끼 공식 홈페이지 캡처) 식품업계에서도 이러한 한글 고유의 매력 마케팅을 찾아볼 수 있다. K-푸드를 중심으로 한 식품업계의 해외 진출 전략에서도 한글이 하나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입증되고 있다. 과거에는 현지화와 접근성을 위해 한글을 지우고 영어나 현지어를 우선시했으나, 현재는 한글 표기 자체가 정통성과 품질을 보증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받는다. 미국 코스트코는 빙그레 측에 ‘싸만코 클럽팩’ 패키지에 한글 ‘싸만코’ 로고를 넣어 달라고 역으로 요청했다. 한글 표기가 들어가는 것이 현지 소비자들에게 정통 K-푸드 이미지를 한층 강화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처럼 익숙하지 않음에서 출발한 한글은 해외 시장에서 제품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기호이자 문화적 매력으로 작용한다. 한글 표기가 해독해야 하는 언어가 아닌, 세계 소비자들에게 독자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전달하는 디자인인 것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한글 우리에게는 평범한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한국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된다. 한글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와 정체성, 우리의 얼이 담겨 있다. 매일 마주하는 간판 속 글자와 제품 속 표기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분위기와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글은 단순한 문자를 넘어 거리의 모습을 만들고, 한국만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한글날을 맞아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한글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장은정 기자, 서성민 기자
제 768 호 호르무즈 해협은 왜 우리의 문제인가?
올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이 급감한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도에서 찾아보지 않으면 위치조차 알기 어려운 먼 바다의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서 배가 멈추면 국제유가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기름값과 전기요금, 기업의 생산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서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바닷길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약 33킬로미터지만, 대형 유조선들이 실제로 오가는 항로는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각각 약 3.7킬로미터에 불과하다. 평상시 이곳을 통과하는 석유는 하루 약 2천만 배럴로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퍼센트에 이른다. 세계 액화천연가스 교역량의 약 20퍼센트도 이 길을 지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란 등지에서 생산된 원유와 카타르의 천연가스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세계 각지로 향한다. 세계의 모든 화물이 지나는 곳은 아니지만, 에너지 수송에서는 쉽게 대신할 길을 찾기 어렵다. 올해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이후 해협의 통항량은 충돌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 이후 해협 재개방과 통항 조건을 둘러싼 협상과 긴장이 거듭됐다. 사태의 전개는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세계의 에너지 수송이 이 좁은 해협에 집중된 데 따른 위험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해협이 지도에서 열려 있다고 해서 배가 반드시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사일과 기뢰의 위협이 커지고, 보험회사가 전쟁 위험에 대한 보장을 중단하거나 보험료를 크게 올리면 선주는 운항을 포기할 수 있다. 실제 배가 다니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는 닫힌 길이나 마찬가지다. 그 영향이 오늘 당장 동네 주유소의 가격표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원유 가격이 오르고, 운임과 보험료가 붙고, 환율이 움직인 뒤 국내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차 때문에 먼바다의 분쟁과 우리의 생활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원유는 자동차 연료로만 쓰이지 않는다. 그 파장은 뜻밖에도 올봄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까지 미쳤다. 원유에서 얻는 나프타는 봉투의 원료인 폴리에틸렌을 만드는 데 쓰인다. 원료 수급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종량제 봉투의 사재기와 품절 현상까지 나타났다. 먼 나라의 지정학적 갈등이 난방비와 항공료, 물류비를 거쳐 결국 장바구니 물가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는 이 문제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수입 원유의 약 70퍼센트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반도체와 정유, 석유화학처럼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에 민감한 제조업의 비중도 높다. 유가가 오르면 공장을 돌리고 제품을 운송하는 비용도 커진다. 원유와 가스는 주로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원화 가치까지 떨어지면 같은 양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데 더 많은 원화가 필요하다. 결국 유가와 환율의 변화는 기업의 생산비와 물가를 통해 가계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제정세라고 하면 흔히 정치와 외교, 안보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국경 밖에서 일어난 사건은 환율과 물가를 움직이고 기업의 생산과 투자, 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먼 나라의 소식을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하나의 사건이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경제와 일상에 이어지는지를 생각해 보는 데 있다. 대학생에게 필요한 국제 감각도 이러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외신을 많이 읽거나 외국어를 잘하는 능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상황과 각국의 이해관계를 살피고, 서로 다른 관점의 보도를 비교하다 보면 그 배경과 파장을 자신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원료와 부품의 공급망을 통해, 경제·경영을 공부하는 학생은 유가와 환율의 움직임을 통해, 인문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그 지역에 쌓여 온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통해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자기 전공의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반도에서 멀다. 그러나 그곳에서 멈춘 배의 영향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까지 온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에너지와 물건의 가격에도, 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사람을 고용하는 결정에도 먼바다의 변화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이미 그 좁은 해협과 연결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제 768 호 [교수칼럼] 효율의 역설
어느 화창한 봄날, 캠퍼스 난간에 걸려 있던 파스텔톤의 귀여운 키링에 적힌 한 문구가 기억난다. ‘노력 없이 행운과 행복을 얻을 운명~~’ 아무런 노력 없이 무언가를 얻는 걸 행운으로 여기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 믿는가? 나아가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능동성 부재의 상황을 꿈꾸다니, 그 달콤한 이면에 숨겨진 함의(含意)가 두렵지 않은가? 우리는 평소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아니,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강요받는지 모른다. 효율의 사전적 정의는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출처: 네이버사전)’이고 수학적으로는 입력에 대한 출력의 비율, 즉 ‘효율=출력/입력’로 정의한다. 입력을 노력으로, 출력을 결과로 바꾸어 본다면, 키링에 적힌 문구는 결국 ‘무한대의 효율을 내는 운명’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이러한 바람을 현실에 대입해 보면, 에너지의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너지는 파워(전력)와 시간의 곱이다. 일은 곧 에너지이고, 파워는 일률, 즉 시간당 일의 양이다. 입력으로 들어가는 총에너지와 입력에 대한 출력으로 나오는 총에너지의 비율이 곧 효율이다. 결과적으로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입력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출력의 시간을 최대화하길 희망한다. 이를 ‘시간적 효율’이라 부를 수 있겠다. 우리가 문제를 푸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단서를 찾고, 이를 조합하면서 그 과정에서 논리를 구조화한다. 마침내 나만의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 결론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다른 명제와 다양한 방법론을 가지고 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지 확인한다. 이를 통해 의구심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물론 내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결론이기에 생각하지 못한 모순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지적 숙고의 과정을 건너뛰고 문명의 이기(利器)에 의존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것을 지혜라 여기며, 시간적 효율 면에서 남들보다 압도적이라 자부한다. 내가 더 빨리 답을 찾았으니 말이다. 전기회로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공식이 하나 있다. 바로 옴의 법칙으로 알려진 ‘V=IR’이다.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보았을, 전기회로를 대표하는 공식이다. 옴의 법칙이 말하는 물리적 현상은, 저항(R)이라는 회로소자(circuit element)에 전류(I)를 흘리는 순간, 즉각적으로 저항 양단에 전압(V)이 나타나고, 그 전압(V)의 크기는 저항(R)과 전류(I)의 곱과 같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입력이 주어지면(저항에 전류를 흘리면) 그 결과(저항 양 단의 전압)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시간적 효율 측면에서 보면, 저항만 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전기회로에는 저항(R) 외에도 인덕터(L)와 커패시터(C)라는 수동소자가 있다. 저항(R)에서 전압과 전류의 관계를 옴의 법칙으로 표현하듯이, 인덕터(L)와 커패시터(C)에서도 전압과 전류의 관계를 수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옴의 법칙과 같은 선형방정식의 형태가 아닌 미분과 적분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유도기전력과 변위전류와 같은 방해 요소에 의해 시간적 지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간적 효율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특성인 셈이다. 하지만 저항과 달리 인덕터와 커패시터는 ‘에너지 저장 소자’라 불린다. 인덕터는 자기장의 형태로, 커패시터는 전기장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한다. 다시 말해, 저항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소자가 아니란 말이다. 입력(원인)이 주어지는 순간 즉각적으로 출력(결과)이 나온다는 것은, 반대로 입력이 사라지면 그 즉시 출력도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무언가를 높은 효율로 순식간에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그 얻은 것을 같은 효율로 순식간에 잃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왜 우리는 얻는 것만 생각하고, 잃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가? 진정한 배움과 성장을 꿈꾸는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빠르게 얻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깊이 있게 머무를 수 있는가’이어야 한다. 전기공학전공 조수환 교수
제 768 호 [순간포착] 잠시, 창밖을 보다
▲ 비행기에서 바라본 노을 (사진: 이윤진 기자) 비행기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천천히 번져 갔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던 승객들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은 하늘을 바라봤다. 누구는 사진을 남기고, 누구는 말없이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담아냈다. 여행의 시작을 앞둔 사람도, 일상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 짧은 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늘 다음 일정과 목적지에 마음이 먼저 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몇 분은 이동의 시간을 단순한 과정이 아닌 하나의 기억으로 바꾸어 놓았다. 때로는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 목적지에서가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이윤진 기자
제 767 호 [기자석] 굳이, 나를 위한 하루 – '굳이데이'가 던지는 질문
요즘 필자가 빠진 날이 있다. 바로 '굳이데이'다. 굳이데이는 부사 '굳이'와 하루를 뜻하는 영어 '데이(Day)'가 합쳐진 신조어로, 다소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낭만을 좇아 일부러 그 일을 해내는 날을 뜻한다. 이 표현은 가수 우즈(WOODZ, 조승연)가 자신의 유튜브 콘텐츠에서 “조개구이가 먹고 싶으면 굳이 인천까지 가서 먹어야 한다”고 언급한 데서 시작됐다. 그가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고 남긴 말이 Z세대의 공감을 얻으며 SNS에서 빠르게 퍼졌고, 이후 각자 자신만의 굳이데이 활동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문화로 확산됐다. 필자 역시 학교와 아르바이트, 과제 사이를 오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을 마주하곤 한다. 이 신조어가 유독 눈에 들어온 이유다. ▲학교와 아르바이트 사이 청계천을 굳이 다녀온 사진(출처 : 김건우 기자) 왜 '굳이' 해야 하는가 굳이데이의 핵심은 효율과 편리함이 최우선인 시대에 역설적으로 비효율을 자처하는 데 있다. 집 앞에 가까운 식당이 있어도 차를 타고 먼 곳까지 가서 원하는 음식을 먹거나, 반차를 내고 당일치기로 지방 맛집을 다녀오는 식이다. 이런 행동은 겉보기엔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을 정도로 수고스럽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회복의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정해진 루틴만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여유조차 잊기 쉽다. 굳이데이는 이런 흐름을 잠시 멈추고,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행동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한 대학생 기고문에서도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우즈의 말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고 짚었다. 결국 굳이데이는 '해야 하는 이유'가 없어도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움직이는 날이며, 그 자체로 자신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혼자여도, 함께여도 괜찮은 시간 굳이데이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실천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혼자 조용히 낭만을 찾아도 되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해도 괜찮다. 예컨대 평소라면 아끼던 용돈을 굳이 나를 위한 카페 나들이에 쓰거나, 나에게 잘해줬던 친구를 위해 굳이 먼 곳까지 찾아가 시간을 내어주는 것도 굳이데이의 한 형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만 집에서 먼 카페를 굳이 찾아가거나,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굳이 서점까지 들르는 등의 소소한 실천을 SNS에 공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거리나 비용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이 정도의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다'는 인식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굳이데이는 하나의 소비 트렌드를 넘어, 자기돌봄(셀프케어) 문화의 한 갈래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늘, 나만의 굳이를 찾아서 굳이데이는 결국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밀려났던 낭만과 자기 자신을 다시 삶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다. 바쁜 학기 중 과제와 아르바이트, 시험 준비에 쫓기는 대학생들에게 이 신조어가 유독 공감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괜찮다. 오늘 하루, 평소라면 지나쳤을 골목의 카페를 굳이 찾아가 보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굳이 먼 걸음을 해보는 것. 그 작은 '굳이'가 모여 나만의 낭만이 되고, 결국 나를 돌보는 하루가 된다. 이번 학기, 저마다 자신만의 굳이데이를 하루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건우 기자
제 766 호 [편집장의 시선] 경험과 용기의 역설
학보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보다 훨씬 용감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글을 잘 쓴다고 믿었고, 잘 모르는 주제도 일단 부딪혀봤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도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보다 아는 것도, 경험한 것도 훨씬 적었지만 자신감만큼은 충만했다. 어느덧 학보사 기자 3년 차가 됐고, 올해는 편집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경험이 늘어날수록 확신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한 문장을 쓰면서도 표현의 적절성을 수없이 고민하고, 취재를 앞두고는 준비가 충분한지 몇 번이고 반문한다. 예전에는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던 일 앞에서 이제는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먼저 떠올린다. 얼마 전 이런 말을 들었다. 배움과 경험은 나이에 비례하지만, 용기는 나이와 반비례하다고. 처음에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경험이 많아지고 아는 것이 많아진다면 더 현명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학보사에서 보낸 지난 3년을 돌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도 더 잘 보이게 된다. 기사의 파급력, 문장의 무게, 취재의 허점 같은 수많은 가능성을 따져보다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경험은 우리를 숙련되게 만들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신중하게 만든다. 문득 내가 잃어버린 것이 과연 ‘용기’였을까 생각해본다. 돌이켜보면 3년 전의 그것은 용기라기보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던 ‘무모함’에 가까웠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무엇이 어렵고 어디서 실패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면서도 그 두려움을 안고 한 걸음을 내딛는 태도야말로 용기다. 어쩌면 지금의 대학생들이 가장 잃기 쉬운 것 역시 바로 이 용기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 성과와 결과를 증명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전에 그것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실패하지 않을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은 완벽함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서툴러도 괜찮은 실패를 감수하며 배워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대학마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곳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서 마음껏 도전하고 서툴러질 수 있을까. 학보사 기자로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완벽함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기자는 모든 것을 알고 쓰는 사람이 아닌 잘 모르는 것을 겸손하게 질문하고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필요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사람이다. 완벽한 문장과 기획을 기다리다 보면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수록 나는 또다시 망설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신중함이 포기의 핑계가 되도록 두지는 않으려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의 무모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을 알고도 다시 한번 시작해보는 용기다. 오늘 밤도 조판본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각자의 시작점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모든 대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두려워도 괜찮으니, 일단 첫 문장을 써 내려가자고. 이윤진 기자
제 766 호 [교수사설] 글로벌 시대, 대학생활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
우리는 흔히 오늘날을 ‘글로벌 시대’라고 부른다. 이는 지식과 정보, 문화와 기술이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에서 만나게 될 동료와 협력자, 때로는 경쟁자 역시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대학 생활 동안 준비해야 할 것들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계와 소통하는 능력에는 외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량이 포함된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다. 소통이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공통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통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독서와 여러 콘텐츠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도 있고, 교환학생이나 해외연수, 국제행사와 외국인 학생들과의 교류에 참여할 수도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협력해 보기를 권한다. 이러한 경험은 외국어 실력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 줄 것이다. 둘째, 자신만의 전문성과 끊임없이 배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은 기회가 넓어진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과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만의 역할을 찾기 어렵다. 자신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발견하고, 그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지금 배우는 지식이 평생 그대로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술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이미 습득한 지식의 양보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울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대학은 단순히 현재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대학은 평생학습을 위한 기초체력을 기르는 곳이 될 수 있다. 대학 생활 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갖춘다면, 졸업 후 새로운 환경과 과제를 만나더라도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정보를 찾고, 글을 쓰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피할 수 없으며, 피할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과 경쟁하려 하기보다 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내용이 정확한지, 편향되어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는지를 판단하는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어떠한 답이 타당한지, 그 결과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흔히 인생의 성공에는 의지와 능력, 그리고 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운은 자신의 뜻대로 결정할 수 없지만, 의지를 굳건히 하고 능력을 키우는 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대학은 바로 그 의지와 능력을 준비하고 습관으로 만드는 중요한 시기이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더 잘 보이고, 준비된 사람은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시작하고 하루하루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운이라고 부를 만한 기회도 여러분의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단순히 적응하는 사람을 넘어, 더 나은 글로벌 시대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 성장하기 위한 준비를 대학 생활에서 해야 할 것이다.
제 766 호 [교수칼럼] 올해 상반기를 돌이키며
2026학년도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재난급의 더위는 여전히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뜻깊은 여름방학을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2026년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올해 상반기를 어떻게 돌이켜보고 계신가요? 상반기에 일어난 사건 중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2026년 2월, 핵무기를 둘러싼 협상 정체를 배경으로 이란을 포함한 중동 전역을 휘말리게 한 대규모 군사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이란과 미국 양측 모두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주장하며 국제 에너지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암담해지는 뉴스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문제나 팔레스타인 문제, 타이완 문제 등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뉴스들은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또한 환경 문제와 이민 문제, AI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비롯한 과학과 윤리의 문제 등 인류가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인류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인류 협력의 첫걸음은 의사소통이며, 그렇기에 저와 같은 언어 교사에게 지워진 책무는 매우 큽니다. 1986년, 유네스코 주도로 언어학자와 교육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언어 교육을 평화 구축의 수단으로 위치시키는 '링구아팍스(Linguapax)' 프로젝트가 발족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외국어 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 하나로 상호이해・평화・민족 협력에 기여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회의는 어디에서 열렸을까요? 정답은 우크라이나 키이우입니다. 평화를 위한 언어 교육 회의가 열렸던 우크라이나에서 36년 뒤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저와 같은 언어 교사는 깊이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품고 있다는 보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일 관계의 유지와 발전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링구아팍스 프로젝트의 사례가 보여줍니다. 저는 지금 유럽에서 탄생한 외국어 교수법인 CLIL(Content and Language Integrated Learning, 내용언어통합형학습)을 연구 테마로 삼아 수업에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CLIL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통해, 공통 언어를 매개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논리성과 유연한 발상력을 키우고, 다양한 타인과 과제를 달성하는 협동적 실행력을 갖춘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전공은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습니까? 세계인들과 협력하여 과제를 해결할 때에는 어떤 사고와 태도가 필요하며, 어떤 언어 능력이 필요할까요?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전달하고 싶습니다. 인류의 과제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평온한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일본어권지역학전공 이이호시 카즈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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